오후 4시경 호텔 교토 에미나스에 체크인하고 방에서 늘어지게 쉬었다. 모처럼 교토에 왔으니 바쁘게 관광을 해도 좋겠지만, 호텔 방에서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나름 좋아하는 일이다.
인터넷으로 사우나 시설을 찾아보며 다음 사우나 여행은 어디로 갈까 고민한다. 여행 중일 때 감각이 더 예민해지는 건지, 좋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나의 사우나 여행 대부분은 여행 도중에 계획된 것들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TV 프로그램을 보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됐다. 슬슬 온천에 들어갈까.
호텔 교토 에미나스에 숙박하면 특전으로 교토 다케노사토 온천 만요노유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만요노유는 전국에 지점을 둔 온천 시설 브랜드로 고베나 요코하마에도 운영하고 있다. 교토의 만요노유에서는 두 종류의 원천을 즐길 수 있으며, 냉탕도 원천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풍부한 온천이 솟아나고 있다는 뜻이리라. 기대감을 가득 안고 대욕장으로 향했다.
숙박자 외에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레스토랑 등은 꽤 북적였다. 남성 탈의실로 들어서니 숙박자 전용 라커가 있었다.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라커 안에는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페이스 타월과 배스 타월이 준비되어 있고 어메니티도 충실하게 갖춰져 있다. 타월 무제한 제공 시설은 많지만 배스 타월까지 완비된 곳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대욕장에 들어서니 천장이 높고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두 종류의 온천수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욕조 종류도 다양하다. 샤워 부스에서 몸을 씻으려고 했더니 놀랍게도 샤워도 온천수를 쓰고 있었다. 이건 정말 보기 드문 경우다. 지금까지 수많은 온천 시설을 다녀봤지만 샤워까지 온천수인 곳은 처음이다. 약간 흥분된 상태로 샤워를 하고 있으니 부드러운 온천수가 정말 기분 좋다. 화장수를 뒤집어쓰는 듯한 촉촉하고 매끄러운 느낌이다. 욕조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온천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샤워로 워밍업을 마친 후에는 노천탕의 원천 방류를 실컷 즐겼다. 기분 좋은 온천수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름다운 별하늘이 펼쳐졌다. 온천에 몸을 담그며 별을 바라본다. 이 시간은 정말 특별하다. 교토에 오길 잘했다. 여행을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집에서 늘어지던 기분을 떨쳐내고 나선 덕분에 지금 이 행복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행동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고, 적극적으로 여러 곳을 다녀야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다는 걸 느낀다. 이 세상에는 아직 보지 못한 풍경이 가득하다.
온천을 만끽한 후에는 사우나에 들어간다. 아담한 구조의 사우나로 1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원적외선 히터 방식으로 쇼와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왠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요즘은 핀란드식 사우나가 유행하여 내가 방문한 시설에서도 대류식 스톤 사우나가 많았기에 원적외선 히터는 오랜만이다. 사우나에는 TV가 달려 있어 여행 프로그램을 즐기며 몸을 데웠다. 조용한 공간에서 명상하듯 사우나에 드는 것도 좋지만, 쇼와 분위기 물씬 나는 공간에서 TV를 보며 땀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냉탕은 정보대로 온천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원천수를 18도까지 냉각하여 제공한다고 한다. 온천수 냉탕은 표시 온도보다 높게 느껴진다. 물이 부드러워서 피부를 찌르는 듯한 차가움이 없다. 계속 들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냉탕 후에는 노천탕으로 이동해 별하늘을 바라보며 외기욕을 한다.
평소라면 외기욕 후에 바로 사우나로 향하는데, 원천 방류 시설에서는 흐름이 조금 달라진다. 외기욕→온천→외기욕→사우나 순서가 최고이니 꼭 시도해보길 바란다. 외기욕으로 정돈된 몸을 노천탕 온천에 담그면 온몸이 기분 좋게 저릿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순식간에 힘이 빠지며 저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기분이 좋다. 온천의 따스함에 감싸여 서서히 몸이 달아오른다. 그 후에는 다시 한번 외기욕 의자에 앉아 밤바람을 맞으며 몸을 식힌다. 그리고 나서 사우나→냉탕 순으로 이어진다. 기분 좋은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에서는 사우나→냉탕→외기욕→온천→외기욕→사우나... 순서를 시도해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3세트 즐겼다.

기분 좋은 온천을 실컷 즐긴 후에는 식사 시간이다. 배가 엄청 고프다. 시설 내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오야코동을 주문했다. 달콤한 맛의 간이 정말 맛있다.
식사를 하며 레스토랑을 둘러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 부부, 커플 등 조합은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온천과 사우나의 힘이다. 대욕장에서는 일상으로부터 해방되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극한까지 릴렉스하는 것뿐이다. 그 공간에서 1시간을 보내면 사람은 다시 태어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올 때는 지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가 돌아갈 때는 고개를 들고 나간다. 그래서 사우나 여행을 멈출 수가 없다.
방으로 돌아와 자기 전에 내일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사가노 온센 텐잔노유와 만요노유라는 슈퍼 센토를 실컷 즐겼으니 내일은 교토의 센토 순례를 하기로 했다. 교토는 일본 최고의 센토 성지로, 드라마 '사도'의 배경이 된 시설도 있다. 가고 싶은 시설을 몇 군데 추려봤다. 어디에 먼저 갈지는 내일 아침 기분에 따라 정하면 된다. 내일 계획이 정해졌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엄청난 졸음이 밀려왔다. 그대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