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디에서 맞이하고 싶은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답을 바로 이날 밤 찾았다.
오전에 OND HOTEL에서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리프레시한 나는 그 뒤 호텔로 돌아와 밤을 대비해 오로지 쉬기만 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밤을 위한 준비다. 오늘 밤에는 당일 입욕으로 미후네야마 라쿠엔 호텔 라칸노유를 찾는다.
라칸노유는 올해 4월 가족과 함께 왔던 추억의 장소다. 철쭉이 만개한 미후네야마 라쿠엔을 걷고 호텔에 묵으며 사우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곳은 일본 전국의 온천과 사우나를 두루 다녀 본 내가 “일본 최고의 시설”이라고 확신한 성지이기도 하다. 그 대단함을 아는 사람으로서 다케오까지 와서 이곳에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이 밤을 위해 다케오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진 다케오 시내를 빠져나와 미후네야마 산기슭으로 차를 몬다. 밤의 미후네야마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되어 하늘과의 경계만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19시 30분, 호텔에 도착했다. 입구 문이 열린 순간 이세계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어둠 속에 팀랩이 만든 무수한 램프가 켜져 있고 입구는 환상적인 빛으로 가득하다. 반년 전과 같은 풍경일 텐데 몇 번을 봐도 숨이 멎는다. 램프의 숲에서 접수를 마치고 드디어 대욕장으로.
대욕장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다. 숙박객들이 정말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곁눈질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숙박객들이 식사에 빠져 있다는 건 대욕장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분명 꽤 음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욕장 문을 여니 신발장에는 신발이 다섯 켤레 정도밖에 없다. 욕실에 들어서자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거의 나 혼자 쓰는 상태다. 전설의 시설 라칸노유를 거의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밤의 라칸노유 분위기는 어마어마했다.
노천탕은 거의 칠흑같이 어둡다. 희미한 불빛이 욕실 전체의 윤곽만 어렴풋이 드러내고 다케오 온천의 김이 어둠을 향해 조용히 피어오른다. 모닥불 구역과 카페 라운지도 어둠에 잠겨 있고 모닥불의 불꽃만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4월에 왔을 때는 해 질 녘부터 입욕했고 저녁 식사 후에는 대욕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밤의 세계가 이토록 환상적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몸을 씻고 노천탕의 다케오 온천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물이 온몸을 감싼다.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술렁임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밤의 미후네야마가 내는 리듬이다. 그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한동안 몸을 데웠다.
여기서부터는 솔직히 말해 순서대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라칸노유가 자랑하는 사우나를 철저하게 만끽하고, 모닥불을 둘러싼 바깥 바람 쐬기에서 의식을 잃고, 세트 사이사이에는 카페 라운지에서 음료와 가벼운 간식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온천과 사우나에 들어가고, 모닥불 곁에서 바깥 바람을 쐬고, 라운지에서……. 그 흐름을 영원히 되풀이했다.
첫 번째 세트는 호지차 향이 감도는 건식 사우나로.
이곳도 나 혼자였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사우나실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다케오 숲의 소리만 조용히 흐른다. 어스름한 공간에 iki 스토브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에는 사우나 전용으로 볶아 우려냈다는 우레시노산 호지차가 준비되어 있다. 국자로 떠서 스톤에 끼얹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윽한 호지차 향이 실내에 가득 퍼진다. 아무도 없는 걸 기회 삼아 코를 킁킁거리며 힘껏 들이마셨다.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향과 소리만 느낀다. 사치란 분명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한계까지 데운 뒤에는 노천 냉탕으로. 다케오 온천의 물을 16℃까지 식힌, 라칸노유만의 냉탕이다. 온천을 식힌 것이니 부드럽지 않을 리가 없다. 순한 냉수가 달아오른 몸을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식혀 간다.
냉탕에서 나와 2층 모닥불 구역으로 올라간다. 이곳도 나 혼자였다. 우드 데크에 드러누우니 모닥불이 타는 스모키한 향이 감돌고 장작이 탁 하고 튀는 소리가 어둠 속에 울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숲의 리듬에 호흡을 맞춘다.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점점 나와 숲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풀리는 경지를 넘어 자아 자체가 사라져 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카페 라운지에서 모닥불을 둘러싸고 푸딩을 먹고 있었다. 이 공간 역시 모닥불 불빛만이 실내를 비추고 있다.
두 번째 세트는 장작 사우나로 향했다.
마치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문을 열면 절묘한 조명에 비친 아름다운 모양의 계단이 나타난다. 한 칸씩 올라가니 그 끝에서 그 거대한 장작 스토브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년 만의 재회다. 오랜만이군, 하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압도적인 크기의 스토브를 향해 물을 힘껏 끼얹는다. 기분 좋은 증기가 실내에 퍼지며 여행의 흥분으로 들떠 있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이번에도 나 혼자였기에 벤치에 드러누워 누운 채로 사우나를 즐겼다. 장작의 열기가 온몸을 천천히 감싼다. 최고로 기분 좋다.
그 뒤로도 같은 리듬으로 냉탕, 모닥불 곁 바깥 바람 쐬기, 라운지 휴식을 반복했다. 세 번째 세트는 다시 호지차 건식 사우나, 네 번째 세트는 다시 장작 사우나.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세트를 혼자서 쓸 수 있었다. 일본 최고라고 확신하는 시설을 밤의 어둠 속에서 독차지한다. 이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경험이라 해도 좋다.

어둠 속에서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그대로 어둠 속으로 끌려가 “당신의 인생은 이 순간 끝입니다”라는 선고를 받는다 해도, 이만큼 극상의 경험을 했다면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의 시간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이곳에서 맞이하고 싶다.
라칸노유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대욕장을 나가고 싶지 않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시설에서는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언젠가는 “슬슬 나갈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라칸노유에서만큼은 반대의 감정이 작용한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가기 싫어진다. 온천과 사우나의 충실함, 미후네야마의 숲에 둘러싸인 자연 가득한 세계관, 세련된 카페 라운지, 그리고 모닥불 공간. 그 모든 것이 하나로 겹쳐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곳에는 있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당일 입욕의 마감 시간인 22시가 찾아왔다. 시간 제한만 없다면 하루 종일 대욕장에 있어도 좋을 정도다. 미련이 남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카락을 뿌리째 뽑혀 가는 듯한 심정으로 대욕장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올라탄다. 그런데 시동을 걸 수가 없었다. 너무나 훌륭한 경험의 여운에 한동안 차를 출발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어두운 차 안에서 앞유리 너머로 밤의 미후네야마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사이 무의식중에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는 예약 완료라는 글자. 다음 날 아침의 당일 입욕을 예약해 버린 것이다.
아침 타임에는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 오늘 밤과는 전혀 다른, 큐겔 아로마 향이 감도는 하얀 사우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인 내일 아침에도 나는 다시 이곳에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