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호텔로 돌아와 있었고 어느새 잠들었고 어느새 눈을 떴다.
어젯밤 미후네야마 라쿠엔 호텔 라칸노유의 기억은 모닥불의 불꽃에서 끊겨 있다. 주차장에서 다음 날 아침 예약을 넣은 건 기억나는데 그 뒤의 일은 안개 속이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직 바깥 바람을 쐬는 중인 게 아닐까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사이 호텔 침대 위에서 다시 몸과 마음이 풀려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가사키·사가 사우나 여행도 드디어 마지막 날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라칸노유의 당일 입욕을 예약해 두었다.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아침 산책에 나선다.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다 보면 덜 깬 몸에 조금씩 피가 돌기 시작한다. 방으로 돌아와 요가 세션을 소화하며 몸 구석구석을 늘려 준다. 8시 접수에 맞춰 몸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최고의 이완 상태에 이르려면 그저 탕이나 사우나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입욕 전에 몸 상태를 다듬어 두면 한층 더 깊은 이완을 실감할 수 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차로 10분쯤 달리자 미후네야마 라쿠엔 호텔에 도착했다. 어젯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미후네야마가 아침 햇살 속에서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과 짙은 초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젯밤의 여운을 끌어안은 채 다시 입구의 문을 열었다. 접수를 마치고 라칸노유로.
라칸노유는 아침 시간대에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 어젯밤에는 남탕 쪽이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여탕 쪽 욕실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한 시설에서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그걸 당일 입욕으로 이루려고 밤과 아침 두 번에 나눠 이곳을 찾은 것이다.
대욕장에 발을 들이자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아침 해가 미후네야마를 비추고 숲의 동식물이 잠에서 깨어나 아침의 리듬을 새기고 있다. 새가 지저귀고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흔들린다. 어둠과 불꽃뿐이던 어젯밤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거짓말 같다. 탕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삼림욕만 해도 몸과 마음이 다 풀려 버릴 것 같다.
먼저 노천의 다케오 온천에 몸을 담갔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물에 아침의 맑은 공기가 겹쳐진다. 몸속부터 천천히 데워지는 걸 느끼며 한동안 아침 숲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세트는 큐겔로 사우나 스톤에 물을 끼얹는 로우류를 즐길 수 있는 건식 사우나로 향했다.
문을 연 순간 벽 전체가 새하얀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마치 눈으로 지은 집 가마쿠라 안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하얀 벽을 자세히 보니 놀라울 만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 흰색은 때가 잘 탄다. 공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은 금세 반감되고 만다. 이 사우나가 완성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하얀빛을 지키고 있다. 매일 누군가가 이 벽과 계속 마주하고 있는 거겠지. 그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우나실 앞에는 아로마 워터를 얼린 공 모양의 큐겔이 준비되어 있다. 향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장미와 박하를 골랐다. 가운데 스토브에 큐겔을 올리고 그 위로 물을 끼얹어 로우류를 한다. 스토브의 열기와 증기에 큐겔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장미의 화사함과 박하의 청량감이 뒤섞인 향이 사우나실 가득 퍼져 간다. 아름다운 사우나와 그윽한 아로마 향. 아침 첫 세트부터 기분이 최고다.
건식 사우나를 나오자마자 냉탕이 있다. 다케오 온천의 온천수를 식힌 것으로 감촉이 참 부드럽다. 차가운데도 어딘가 다정하다. 아침의 몸이 서서히 식어 간다.
냉탕에서 나와 노천으로 돌아가 모닥불을 둘러싼 벤치에 앉아 바깥 바람을 쐰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 거세게 타오르던 모닥불이 아침 햇살 속에서는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다. 모닥불의 스모키한 향과 포근한 온기가 위로가 되어 주고 다케오 숲의 공기와 소리가 인간으로서의 리듬을 되찾게 해 준다. 여기 있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그리고 인생이 정돈되어 간다. 라칸노유란 그런 곳이다.
바깥 바람을 쐰 뒤에는 찻집에서 잠시 쉰다. 사가현산 말린 귤, 푸딩, 공 모양 양갱, 가린토, 디톡스 워터. 늘어선 것들을 풀코스로 차례차례 맛본다. 말린 귤을 깨물자 응축된 새콤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사우나 사이사이에 먹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호화로운 라인업이다.
두 번째 세트는 장작 사우나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혼자 독차지다.
아름다운 장작 사우나의 조형을 바라보며 거대한 스토브에 물을 시원하게 끼얹어 습도를 올려 간다. 여탕 쪽 장작 사우나는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다. 벤치에 드러누워 위를 올려다보니 유리 너머로 아침 해를 받은 나무들의 초록이 펼쳐져 있었다. 사우나 안에서 숲을 올려다보는 경험은 좀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장작이 타는 타닥타닥 소리와 나무가 그을리는 스모키한 향에 마음을 맡기며 느긋하게 몸을 데웠다.
장작 사우나를 나오자마자 있는 곳에도 냉탕이 있다. 여기에 몸을 담가 확실하게 몸을 식혔다.
냉탕 다음은 바깥 바람을 쐴 시간인데 사람도 적어서 장작 사우나 옆 벤치에 드러눕기로 했다. 장작 사우나 주변은 욕장 안에서도 숲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야말로 숲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바깥 바람 쐬기다.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며 아름다운 초록을 멍하니 바라본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해가 조금 높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 후 세 번째 세트는 큐겔의 건식 사우나, 네 번째 세트는 장작 사우나를 즐겼다. 세트 사이사이에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바깥 바람을 쐬고 찻집에서 맛있는 간식을 집어 먹는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경험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만끽했다.


아쉽지만 이별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기쁨을 곱씹고 반드시 또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미후네야마 라쿠엔 호텔을 뒤로했다.
자,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저녁 비행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이미 피크엔드를 맞이한 기분이긴 하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곳 더 가고 싶다. 최고의 경험으로 끝내야 할까, 아니면 욕심을 부려야 할까. 이번에는 욕심을 부리기로 하고(이게 실수였지만...) 나가사키 시내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 여행이 시작된 나가사키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목적지는 ONSEN&SAUNA YUKULU다.
